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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상

딜레땅뜨 dilettante

by 安喩齋 2016. 3. 5.

다양한 소재에 관심을 가지고, 블로그나 카페에 포스팅하는 분들을 본다. 전업이 아니지만, 아마츄어로 상당한 경지에 이르는 분들도 있다. 이들에게 적절한 이름을 붙이자면 프랑스어로 딜레땅뜨 dilettante가 될 것같다. 미국식 발음은 [dìlitάːnti] 딜리터언들리고 영국식 발음은 [dìlitǽnti]로 디ㄹ티언로  들린다.

 

이 말이 좋다. 본인은 취미로 인문학을 고찰한다. 옛 정의에 억메어 인문학을 문사철로 한정하는 이들과 생각을 달리한다. 당연히 인문학 학위자가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이 용어를 나에게 적용하여야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상황(과거나 현재)에서 이뤄진 것을 고찰하는 것에서 인문학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스토텔레스 공자 등등의 위인들의 인문학에는 凡人으로서 고찰하는데 버겁다. 민속도 인문학으로 중요하다.    

 

과거 사람들의 모든 생활상에서, 다양하고도 많은 사례 분석과 경험에서 인문학 연구는 시작되어야 한다. 연구하기 위해서는 직관적인 추리력이 중요하다.  현재 강단에서 인문학 학위를 가진 이들은 학위 자체에 의미를 둔다. 이들은 학위와 전문지식이 일치하는 것으로 본다. 물론 연구방법론에서 그들이라서 해서 전문지식을 갖췄다면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고 과거 실록이나 문집에 아니면 2차 자료 3차료에서 파생된 것에 의존한다면 이는 방법론 자체에 크나큰 흠결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 세미나, 강좌, 콜로키움 등에 참석해 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아마추어보다 못하다는 것을 실감하는데, 이는 당연하다 그들이라고 모든 것을 고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의향도 없으려니와 탓할 권리도 없다.

 

플로어의 질문에 자신이 아직 연구 못했다며 좋은 의견을 보내 달라며 명함까지 주는 교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교수는 전혀 고찰해 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어설프게 임기응변의 거짓말로 둘러댄다. 이름 좀 알려진 교수일 수록 그렇다. 그렇다고 본인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는 않다. 이유는 그 발표자의 한계를 알았기에 더 많은 거짓말을 생산시킬 필요가 없어서다.

 

딜레땅뜨 dilettante들이여!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고찰하여, 일정한 법칙성을 발견하였다면 바로 그게 과학적 생활이며   법칙성을  정교화하여 일정한 형식을 갖춰 글로 발표하면 논문이되고 이론이 된다.

취미생활을 즐기며 과학자로 거듭 나, 후세에 유용한 지식을 물려주자!

이것이 모이서 국력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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