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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상

예학이 왜 사라졌나?

by 安喩齋 2015. 3. 31.

조선의 왕은 통치수단으로, 신하들은 권력 투쟁 도구인 이데오로기로 禮를 禮學으로 삼았다.

 

사례(四禮) 오례(五 禮)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한적의 대부분을 차지 한다. 심지어 '성리학의 꽃이 예'라고 주장하는 소위 국사학자라는 이가 있다. 조선에서 글로 쓰여진 것은 모두 학문으로 통칭되는 웃음거리다.

 

조선에서 떠받들던 禮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떠한 유용성을 가지는가를 고찰한 국사 전공자가 있는지? 없는지? 아직 눈에 띄지 않고, '성리학의 꽃'이 예라고 주장하는 이는 승승장구하는 현실이다.

 

지금 그들이 말하는 禮는 유학 전공자 아니면 儒林(성균관)근처에서 어정거리며 무슨 출세라도 한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이들의 일거리로 전락되었다.

 

조선에서 수백년 지켜온 예학(禮學)이 쉽사리 사라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가? 그들이 말하는 예는 지금 현대인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그들은 말할 것이다. 현대인이 지키지 않아서 그렇다고.

 

그것을 지키지 않아도 굶주리던 시대를 탈피하고, 세계 경제 대국이 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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