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안동에 갔다.
안동에는 내집이 있다.
우리집이 아니고 내집이다.
식구 아무도 안가고 나만 가니 내집이다.
멀리 소백산 줄기와 발아래로 저수지가 있다.
500년전 퇴계공이 독가마 타고 다니던 길이다.
여덞달만에 갔다.
빈 집을 차지하려고, 정신 잃은 칡넝쿨은 아궁이로 기어 들어가고,
지붕까지 올라갔다.
기 삼백들여 사다 심은 매실 복숭아 묘목 순은 고라니의 간식으로 없어지고,
대추나무 감나무는 뿌리가 부실한지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잘 자랄 것갔던 다복솔은 누가 뽑아가고,
그나마 살아서 잎을 티우던 포도 작약 장미는 칡에 횡사했다.
연 못 바위에 원앙이가 알을 낳고 사라지기도 하고,
뒷 뜰에, 꿩이 한 소쿠리 알을 낳고, 나에 놀라 달아나니 내가 더 놀랐다.
아래 집 철부지 아나낙이 이를 보고 주워 담길래, 그냥 두라고 말려도 가져갔다.
내집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밤에는 온통 별천지고,
낮에는 나 혼자다.
이번에 보니 집뒤에 누군가 작은 오두막을 지었다.
연 못도 만들고, 분수도 해 놓았다.
거기에 가면 사귄 친구들이 있다.
과수원 밭일하느라 무척바쁘다.
내가 왔다고 하면, 동네 친구 김, 박씨 형, 그리고 아줌마(할머니)들이 여기저기 골에서
친구 고씨 집으로 모인다.
삼겹살을 구워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골향취에 흠벅젖는다.
태어난 곳도 아니고, 연고가 있는 곳도 아니고 전혀 모르던 곳이다.
고구마를 가져가라고 싸주고, 사과를 싸주고 ...
그들이 고생한 것을 잘 알기에 가져 올 수 없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도와주려 하는 마음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같다.
안동이라면 외지인들은 고집센 할아버지만 있는 줄 안다.
나는 안동이 좋다.
안동에 살며 편안함(安)을 깨우치며 즐기(喩)는 집(齋)이 안유재(安喩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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