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아버지가 서명을 받고 있었다. 서명은 자신의 뜻을 알리는 방법으로 국가정책에 반영되기도, 자신의 억울함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선듯 서명을 못하는 것는 악용될 수 있고, 또 주소까지 기재하니 게름칙하다.
무슨 내용인가 보니, 한자교육을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실시하자는 내용이다.
본인은 한자교육 자체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는 사람으로서, 그 할아버지에게 양해를 구했다.
중국은 한자로 골머리를 싸매고 이를 개선하려 안간 힘을 쓰는데, 우리가 한자교육을 실시하자는 것은 넌쎈스다.
물론 한자교육 찬성론자는 여러 이유를 들고 있으나, 그 부작용을 생각하여 보았는가? 어느 일부만을 보고 모두가 좋다고 주장할 수 없다.
본인은 그런대도 한자를 이해는 하는 편이지만, 한자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는가, 지금도 고문서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데, 이러한 부작용을 어떻게 해결한다는 것인가에 대한 고려는 없다.
한자는 추성적인 사고에서 자유롭다. 그러나 정확한 소통을 위한 현대 사회에 적합한 문자가 아니다. 옛날 이야기는 한문 전공자들이 옳바르게 번역하여 우리에게 제공하면 된다. 우리 모두가 한문 전문가가 될 수도 없거니 그럴 필요성은 더더욱 없다. 소통이 안되는 사회는 후진성을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