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어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더구나 죽은 이의 이름은 더욱 그랬다. 그래서 고인의 이름 앞에 피할 諱(휘)자를 써 놓는데 이는 이름 부르는 것을 피하라는 것이다. 행사한다는 집안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새로 字를 지어 불렀다. 그런 字가 지금은 가짜 족보 만들 때 유용하게 활용된다. 스승이나 선배로부터 호를 지어 받거나 스스로 존경하는 선현을 본 받고자 그의 호를 차운하여 짓기도하고, 자신의 이상을 뜻하는 글자를 선정하여 호로 삼아 그렇게 불러주길 바랐다. 고위 관직에 오르거나 큰 공을 세우면 왕이 군호를 내리고, 죽은 후에는 그의 행적이 월등하면 상소에 의해 시호를 내렸다. 물론 여기에도 당파에 의한 끼리끼리가 존재하였다.
지금은 누구나 비석을 세우는 세상이 되었지만, 조선 사회에서 신도비는 최소 판서 이상이 되어야 세울 수 있었는데 이 또한 공적이 없으면 함부로 세울 수 없었다. 크기 문양 장식 그리고 형태도 직책에 따라 생전의 공로에 따라 달랐다. 어느 신도비는 아름답고도 장중하여 조각이나 글씨의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이름있는 이들이 짓고 썼다. 어느 비는 중국 명필의 글자를 집자하여 건립하였다. 카메라나 복사기가 없던 시절 중국의 비문 글자를 집자하여 건립하였다는 것은 이만저만 수고스런 일이 아니었다.
현재 신도비는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된다.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것은 좋으나, 문화재 명칭을 보면 오히려 선현을 비하하는 꼴이다.
이유인 즉, 우리 선조들의 얼과는 정반대로 문화재 명칭을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존경하는 성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신도비를 단지 '이순신 신도비'로 규정한 것이 문화재 관련 법규정이다. 누가 이런 법규정을 만들었는지 선조들의 문화와 하등 관심없는 이가 어쩌다 그 자리에 앉아 만든 법규정이 아닐가?
소생 선조의 신도비가 'ㅇㅇㅇ 신도비'로 되어있는데, 전란시 전투에서 순국하여 영의정까지 추증되고 시호도 받았는데, 어찌하여 '동네 아이 이름 부를 듯 하였을가?' 보고만 있는 것이 후손으로서 도리가 아니어서, 이를 시정하려 10여년 전에 군청에 전화를 하니 담당자 말은 향토(지역) 문화재 위원들의 소견이 있어야 개정될 수 있다고 하여 미루었다. 며칠 전 직접 군청 담당자를 찾아가니, 담당자 말이 한결 호의적이었다. 증빙 사료를 첨부하여 민원으로 제출하면 도에 건의하여 개선하겠다고 하나, 시호는 넣지 말라는 것이었다. 시호는 함부로 내리 것이 아니라 나라에 큰 공이 있어야 하고, 후세가 본 받으라는 것인데...
민원서류를 작성하고자 문화재 관련 법규를 살펴보니, 초상이나 신도비에 단지 'ㅇㅇㅇ 초상' ' ㅇㅇㅇ 신도비'만 명하라는 법규가 존재하였다. 그래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신도비'가 아닌 단지 '이순신 신도비'로 명명되었던 것이다. 선조들의 문화에 전혀 교양없는 이가 '문화재 명명 법규'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아니면 다른 나라의 문화재 관련법규정을 살펴 보았을 터인데, 우리의 얼은 살펴보지 않았단 말인가?
문화재 전문위원이란 이들은 무엇이 전문인지 의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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