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빠진 쥐
가끔 전철 7호선을 이용하는데, 어느 날 전철 문이 열리면서 '발빠진 쥐'라는 멘트가 들렸다. 무슨 소린가 의아하였는데 또 다시 '발빠진 쥐'라고 반복해 들렸다. '참 이상도 하다'. 개통시부터 이용해도 그런 멘트가 없었는데, 왠 일로 '발빠진 쥐'를 외쳐 대는지 ....
며칠 후 무심코 7호선을 타려니 '발빠진 쥐'가 또 들려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다음 정거 역에서 온 정신을 집중하여 들었더니, '발빠짐 주의'다.
발빠짐 주의
쓴 웃음이 나오기에 앞서 괘심하였다. 남녀노소 불특정 대중이 매일 수 십만 명이나 이용하는 전철에서 이렇게 표현하여만 하는 걸 가? 이럴 때 적절한 표현은 없을 가? 혼란스런 문구로 멘트하다니 ...이를 만든 이는 누구인 가? 그리고 한 사람의 생각과 결정만으로 이뤄졌을 가?
'발 빠지다'는 우리가 통상 수렁이나 늪같은 물이 있는 곳을 잘 못 밟았을 때, 쓰이고 '빠졌다'는 본체를 구성하는 일부가 본체로부터 이탈되었을 때 '빠졌다'고 한다. '발빠진 쥐'로 들리니 '쥐 발이 쥐 몸체에서 이탈되었다'는 흉칙한 상황을 연상시키게 한다.
헛 디딤 조심
이런 상황에서 '헛 디딤 조심'이라 표기하고 경고(멘트)할 때는 '헛 디딤을 조심하십시오'라고 하면 적절하지 않을 가?
'차 조심' '길 조심' '물 조심' '불 조심' '개 조심' 소매치기 조심' 등등 경고문의 표기에서 '차' '길' '물' '불' '개' '소매치기' 등등은 보통 명사로서 익히 잘 알고 있다. 뒤에 조심을 붙여도 전혀 혼란스럽지 않다.
이렇듯 '조심'이란 경고 앞에 '헛 디딤'을 놓으면 자연스런 표현이 된다. 통상, 울퉁불퉁한 곳, 사이가 벌어진 틈을 잘 못 밟았을 때는 '헛 디뎠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경고로 말(멘트)할 때는 '헛 디딤을 조심하십시오!'라고 동사 명령형으로 한다.
MIND THE GAP
세계 첫 지하철을 건설한 런던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MIND THE GAP'이라 멘트 한다. 벽면에도 눈에 띠는 곳에 'MIND THE GAP' 이란 문구를 표기하였기에, 외국에 처음 나간 본인에게 예전에 전혀 듣지 못했어도 '마인 더 갭'으로 분명하게 들렸다. 영국 생활영어를 접할 기회가 좀처럼 없던 당시라서 현지인에게 물어서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해외 여행이 자유로워 'MIND THE GAP'를 쉽사리 이해할 것이다.
생소한 말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이들이 코미디언(희극인)이다. 지하철 공사가 기본적인 언어 표현을 고려하지 않고, 비문으로 멘트하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 가? 시민을 상대로 희롱한다는 생각에 이르니, 더 괘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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