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 중학생 시절,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6.25 참전 용사 자선 기금을 위한 사랑의 열매를 교복에 달았다. 생생하던 6.25동란이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지더니 사랑의 열매 다는 것도 현실에서 사라졌다. 6월의 야생 벗지를 형상화 것이었다.
오래전 런던에서 요크를 오갈 때 차창 밖 벌판의 빨간 개양귀비 꽃이 아름다웠다. 11월이 되니 그곳 사람들이 개양귀비 꽃을 옷에 달았다.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에서 11월 11일은 종전기념일(Armistice Day)이다.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이 1918년 11월 11일에 끝났는데, 당시 영국은 1차대전 종결 시간을 그리니치 표준시로 오전 11시로 맞췄다.
영 연방 지역에선 이를 11번째 달, 11번째 날, 11번째 시간(Eleventh Month, Eleventh Day, Eleventh Hour)이라 부르며, 11이 세 번 겹치도록 한 것은 두고두고 기억하기 쉽게 할 목적이었다. 이 날과 가장 가까운 일요일을 ‘현충 일요일(Remembrance Sunday)’이라 부르며 추모의 날로 삼고, 붉은 개양귀비꽃을 단다.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남부 사이에 있는 프랜더스 들판은 1915년 봄 끔찍한 전장이었다. 캐나다 군의관 소령인 맥그래는 캐나다인, 영국인, 인도인, 프랑스인, 독일인 등 부상자들을 치료하는데 정신없이 17일을 보내던 중, 1915년 5월 2일 어린 친구이자 학생인 오타와 출신 알렉시스 헬머 중위가 포탄에 죽자 크게 상심하다 그날 늦게 목사도 없이 자신의 야전 응급치료소 근처에 묻는데 도랑 뚝에 핀 빨강 개양귀비꽃이 눈에 확 들어 왔다.
'왠 양귀비꽃이지?'
다음 날 5월3일, 구급차의 뒤에 앉아서 맥크래는 그의 역사적인 시 '플랜더스 들판에서'를 지어 고통을 발산했고, 그 해 12월 8일 '펀치 매거진(Punch magazine)'을 통해서 첫 출판되어, 1차대전 희생자를 기리는 상징이 되었다.
1989년 11월 영국 다이아나 비가 방한 했을 때, 그녀의 상의에도 개양귀비꽃이 달려있었다. 우리에게 어떻게 받아 들지 궁금하였다. 그 후 연말이 되니 우리도 사랑의 열매를 다시 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원래 6월에 달던 6.25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의미는 사라지고, 연말 불우이웃 돕기 모금으로 변질되었고, 형상 또한 6월의 야생 벗지에서 사과로 달라졌다. 지금 우리가 연말에 다는 사랑의 열매 유래로 생각된다.
In Flanders Fields
프란더즈 들판에서 (번역 안유재, 여러 번역이 있으나 나의 느낌으로)
개양귀비 꽃 하늘거리는 플랜더스 들판에,
줄줄이 서있는 십자가들 사이,
저 십자가 우리 누운 곳이네,
하늘에는 종달이 애끓게 울부지며 날건만
저 아래 총성에 그 울음 가물거리네.
우리는 이제 저 세상 사람들.
얼마 전만 해도 새벽에 깨곤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았지.
사랑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였건만
지금은 플랜더즈 들판에 이렇게 누웠네.
우리 적과의 싸움을 이어받으라!
우리 손으로 던지지 못하는 이 횃불;
이제 그대들의 것이니 붙잡아 높이 들어라.
우리와의 신의를 그대들이 저버린다면
우리는 영영 잠들지 못하리,
비록 플랜더즈 들판에 개양귀비꽃 자란다 하여도.
— 존 맥크래(1872~1918)
현재 영국과 캐나다에서는 매년 종전 기념일인 11월 11일 11시에 2분간의 묵념 후 이 시를 낭독하거나 배운다. 노래로도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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