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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상

혼비백산했던 순간

by 安喩齋 2017. 9. 29.

칠곡 송정자연휴양림에서, 잘 알려진 소설가와 시인이 함께하는 1박2일 인문기행에 참석했다. 어제는 소설가의 시간을 마치고, 저녁식사 후 여흥을 갖고 휴양관 진달래 방에서 잤다. 아침 식사를 남보다 일찍 마치고, 시인이 주관하는 행사까지 2시간의 틈을 타,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기반산(464.7m,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망정리, 송정자연휴양림에서 정상까지 40분 정도 소요(1.5km) 을 오르기로 했다. 하루가 다르게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날씨다. 숲 속 곳곳의 철 지난 방갈로와 평상(데크)은 세월의 무상을 알려준다. 계곡으로 난 등산길은 가파랐으나, 임도는 이리저리 돌려 나 있어, 시간을 생각해 계곡길을 택하였다. 


길의 숲풀을 전날 깍았는지 베어진 풀잎들이 살짝 말랐다. 숨을 몰아 쉬며 오르니, 전망대를 지나 평탄한 등선길이 나타났다. 이런 길이 나오면 건성 신바람이 난다. 깍인 풀을 밟으면 사뿐거리니 한층 즐거움이 더 하였다. 비스듬한 오솔길로 정상을 불과 200여 미터를 앞 두었기에, 낙동강과 금오산을 상상하며 앞을 보다, 그 자리에서 얼어 붙었다. 그야말로 혼비백산했다. 바로 앞에 언제 나타났는지 전파발신기를 단 멧 돼지 추적 사냥개가 나를 노려보며 천천히 내려 오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산속 오솔길에서 무시무시한 놈과 맞닥드린 것이다. 이 순간을 어떻게 하여야 할 가? 난감하기만 하였다. 놈을 자극시키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만 떠올랐다. 그 놈이 멈첬다가 한 발짝씩 나를 향해 닥아 올 때의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간장이 서늘하였다.근처에 다른 놈들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겁이났다.   


놈은 진돗개와 도베르만 핀세르의 교잡 종 같았고, 사냥개치고는 험상 굳지 않고 갈끔한 외모였다. 이 산중에서 119에 연락해도 시간상으로 나를 구하기는 불가능하고 만약 휴대폰을 꺼 내다가 놈을 자극하면 안 되기에 더욱 난감했다. 부드러운 소리로 '저리 가~ 아 응~'이라 하니 나를 향해 오다가 멋짓 멈추고 나와 대치 하였다가 또 한 발 한 발 닥아 와, 손 뻗으면 닿을 거리인 40 cm까지 접근해 왔다. 머릿 속에는 놈한테 물려 피투성이 되면 어떻게 하지, 그 생각 뿐이었다. 


놈이 나를 보고 반가운 기색도 그렇다고 전혀 으르렁 거리지도 않았다. 유일한 안도감은 놈이 험상 굳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놈이 내가 올라오는 기척에 멧돼지로 알고 기다린 것같기도 하고 한편으로 이 놈이 길을 잃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 둘레에 전파발신기를 달지 않고 산이 아닌 길에서 만났다면 귀엽기까지 하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돌변하여 달려 들면 어떻게 하지? 아찔한 순간 순간이었다. 


몇 분이 흐르니, 물리적 몇 분이지 심적으론 수십년이 흐른 시간이었다. 놈이 날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생겼고, 놈도 내가 절 해치지 않을 것이란 이심전심이 통하고 있었다. 휴대폰에 담으려 폰을 꺼내 카메라를 작동 시키니 어찌된 일인지 내 얼굴만 나오는 셀카가 작동하였다. 화면 메뉴를 찾아도 보이지 않고, 내 얼굴만 계속되었다. 황당 그 자체다.


폰에 신경 쓰는 사이 놈은 대치상태를 풀고 사라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담으려 해도 담겨 지지 않았고 놈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놈은 멧돼지가 아니라 허탕 처 씁쓸했겠지만, 난 저승사자를 만났던 것이다.


가슴을 쓸어 담으며 하산하는데, 놈이 사라진 산 위쪽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그 놈과 대치했을 때보다 더 두려웠다. 사냥꾼들이 나를 멧돼지로 오인하고 총을 쏘지나 않을 가? 그 두려움은 관리실 근처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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