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는 고서점을 찾는다. 이제 시간이 나면 고서점을 찾는 중독증상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꼭 소용되는 자료를 구한다기 보다는 금단현상을 피해 보자는 것이다.
고서점에 가면, 다양한 이들이 모인다. 전직 교수, 전직 아주 고위직, 고서 장사꾼도 있어, 다양한 이들을 만나 담소도 나눈다.
어제는 자주 만나는 후배되는 H를 만났다. H는 한문과 국문학을 학부와 석.박사과정을 이수하여 그 방면에 아는 게 많다. 기억력도 좋아 역대 인물들을 꿰뚫고 있다.
본인은 한문이나 역사, 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대화 중 막히는가 싶으면, "전공자도 아니면서"라고 입을 연다. 국문학이나 국사를 전공했다는게 뭘 의미하려는지 모르지만, 이 또한 식민사관에 찌들어 녹쓴 삭아 빠진 헌 칼이다. 그져 잠자코 있어 준다. 그래야 그들이 만족하지 않을 가 하는 배려다.
각설하고, 누군가 고서적을 구입하면, 저녁을 하면서, 뭘 구입했는지, 서로 자랑도 하며, 의견을 나누는게 상례다. 어제는 H가 신이 나서, 고서적을 보여 주는데, 고금운서와 융희 기유년 (1909년)에 간행된 청해이씨 세보 1권이다. 고금운서는 한자의 운을 설명한 것으로 한시를 지을 때 유용하며,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참조하였다고 한다.
청해이씨 시조인 이지란은 여진족 출신으로 본명은 쿠란투란티무르(古倫豆蘭帖木兒)이고, 원나라 말기인 고려 공민왕 때 부하를 이끌고 귀화하여 북청(北靑)에 거주하며, 이성계와 친밀하게 지내면서 이성계를 도와 고려를 없애고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는데 공을 세워 개국공신 1등에 올랐다.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졌다. 청해는 북청의 별호이고, 이성계로부터 이씨성을 받았다.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중, 정도전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였다. 그렇잖아도, 정도전 재평가를 쓰면서, 려말 선초의 자료를 구하던 중, 이는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이지란은 이성계를 도왔기에 정도전과 한 무리였다. 그러니 정도전을 지근에서 잘 알 수 있는 인물이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公因言 鄭道傳姦 必不命終後 道傳誅 太祖始知 公知有先見也 太宗嗣位 以公 能雖 道傳姦又 素推忠秉義 翊載定
공(이지란)의 말에 따르면, 정도전은 간사하여, 필히 명령없이, 정도전의 목을 잘라야 했다. 태조(이성계)는 처음부터 공(이지란)이 선견지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태종(이방원)이 사직(왕위)에 올라 말하기를 정도전이 간사하고 또한 ....
이지란이 정도전을 간신으로 칭하고, 그의 목을 베는 것을 당연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물론 태조(이성계)도 정도전의 이러한 인간됨을 알고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이처럼 정도전에 대한 당시의 기록들은 간신배로서, 그를 처없애는 것을 심적으로 동조하는 대목이다.
다른 사서들을 정리하는 중에, 밝혀지지 않았던, 이지란의 정도전에 대한 생생한 귀중한 기록이기에 우선 여기에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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