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거수 경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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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지 문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
오래전부터 TV에서 북한의 김정일, 김정은 부자의 경례하는 꼴을 볼 때마다 속에서 열불이 난다. 김정일은 언제나 손가락이 느슨하게 벌어져 있었고 팔을 굽힌 각도도 겨우 90도가 될까 말까, 힘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느릿한 ‘군기 빠진’ 경례였다. 그의 아들 김정은은 손가락은 대충 붙어 있지만 팔을 굽힌 각도가 예각이 아니고 둔각이고 손끝은 자기의 눈썹을 향하고 있지 않고 하늘을 향하고 있다. 나는 군 복무도 하지 않았고 집안에 남자 형제가 없어서 군대에서 훈련받은 이야기도 듣지 못했으나 뉴스나 영화 만 보더라도 군대의 거수경례는 샤프한 것이 생명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소위 군 최고통수권자라는 인간들이 그런 얼빠진 경례를 하면서 군기를 단속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어떤 초년병이 고참병에게 그런 경례를 한다면 아무리 민주화된 요즘이라도 호된 기합을 받고 다시는 경례를 허투루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김정일, 김정은 부자의 얼빠진 거수경례 |
북한 주민들, 특히 복무기간이 10년이어서 청춘을 군대에 바쳐야 하는 북한의 군인들은 자기들의 국가 원수요 군 최고지휘자의 그런 경례를 보면서 심경이 어떨까? 핵무기 갖고 군대놀이 하는 어린아이의 장난감 병정이 된 기구한 운명이 얼마나 한스러울까? 김정일, 김정은 식의 거수경례는 군대에 대한 모독이고 국민에 대한 무지막지한 결례이다. 거수경례는 서양문화의 멋진 발명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서양에서도 옛날에 남성들의 절은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천천히 허리를 깊이 숙이는 것이었다. 목덜미와 등을 상대방 앞에 무방비로 내려놓아 생살여탈권을 바친다는 신뢰와 존경의 제스츄어였다. 그러나 군대에서, 전시상황에서 그런 예의를 표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위험천만한 일이다. 절을 하는 동안에 적군이 덮칠 수도 있지만 그런 정교한 절을 하는 사이에 긴장이 풀어질 수밖에 없고, 또 긴장을 풀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절이기 때문에. 그래서 지극히 시간을 절약하면서, 에너지 소모는 최소화하면서, 긴장을 오히려 조이는 거수경례가 고안된 것이 아닌가 한다. 힘을 주어서 찰칵, 예각으로 팔을 접어서 최단 시간 안에, 최소의 에너지를 들여, 정신력을 재무장할 수 있는 인사이다. 대통령의 인사는 군 기강을 훼손하지 않아야 이번에 여성대통령을 맞으면서 혹시나 경례를 제대로 못 해서 ‘역시 여자야’ 소리가 나올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철두철미한 군인이었고 자신도 퍼스트레이디 역을 하면서 여러 군 행사에 참석했을 것이므로 별문제 없겠지, 했다. 그런데 취임식장에서의 경례는 조금 미흡했다. 손가락은 잘 붙어있었고 팔꿈치의 각도도 확실히 예각이었지만 손바닥이 조금 밖을 향했고 손도 얼굴과 3센티 정도는 떨어져 있었고 손가락 끝이 눈썹보다 약간 위로 올라왔다. 그러나 며칠 후에 계룡대의 장교임관식에 가서 보인 경례는 정확했다. 경례가 정확하니까 훨씬 결연해 보이고 군 통수권자로서 믿음이 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이에 누가 박 대통령에게 정확한 경례 법을 가르쳤고, 박 대통령은 정신 차려 배웠다는 증거로서 마음 든든했다. 북한에서는 무수한 별들이 김정일, 김정은의 주위를 맴돌지만 그 노장들이 감히 젊은 우두머리의 경례 하나 바로잡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로동신문이나 중앙TV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영웅이요 장군인 지도자’의 맥 빠진 경례에 대해 언감생심 한 줄, 한마디 언급하지 못 한다. 그러나 군 통수권자의 경례가 정확하다고 해서 우리 군의 기강에 대해 안심할 수는 물론 없다. 김병관 전 국방장관 후보의 이력을 보면 장성급의 군인정신이 얼마나 훼손되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그렇게 백만 군인의 모범이 될 수 없는 사람을 기어코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려 한 것은 심각한 군 기강 훼손이고 우리 군대와 국민에 대한 무례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모든 자리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로 채워져야 하지만 국군 관련 인사야 말로 정치적 임명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이번 일로 박 대통령이 이 점을 확실히 인식했기 바라마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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