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해]美 하원 박수소리의 불편한 진실2013-04-30 03:00:00
최영해 논설위원
“미국은 가까운 이웃이자 친구입니다. 또 동맹국이자 동반자입니다. 우리 같이 갑시다.” 이명박 대통령의 뜨거운 연설에 미국 하원 본회의장은 박수 소리로 가득했다. 이 대통령은 45분 연설 동안 45차례나 박수를 받았다. 역사적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기념해 성사된 한국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엔 435석 하원 본회의장 좌석이 빼곡히 메워졌다. 3층 방청석 중앙에 앉은 김윤옥 여사는 한덕수 주미대사의 부인 최아영 여사와 함께 기립박수를 치며 흐뭇해했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확인하는 이 자리는 한 대사가 미 의회 실력자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낸시 펠로시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백방으로 뛰어 성사된 것이었다. 워싱턴특파원이었던 기자는 2011년 10월 13일 오후 하원 본회의장이 내려다보이는 기자석에서 대통령 연설을 취재했다. 국빈(國賓) 방문과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성사시킨 한 대사는 입술이 부르텄다. 의회에 출근해 의원들에게 FTA를 설득하는 게 일과였다. 대사관저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전날 의원들에게 보낸 e메일 답신을 체크하고 그날 하루 동선(動線)을 챙겼다. FTA와 관련해 잘못된 미국 언론 기사가 나면 해당 기자에게 e메일을 보내 바로잡았다. 별 보고 퇴근하는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날 사단이 날 뻔했다. 오후 4시에 예정된 이 대통령 연설이 임박했지만 하원 본회의장 좌석은 좀체 채워지지 않았다. 하원의원 435명과 상원의원 100명 등 모두 535명의 상하원 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이벤트인데도 관심을 기울인 상하원 의원은 소수였다. 6·25전쟁에 참여했던 코리아 코커스 의원들과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의원들 정도가 고작이었다. 한국 대통령의 연설은 상하원 의원들에게 큰 관심사가 아니다. 기자석에서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 연설 10분 전 일련의 무리들이 줄을 지어 본회의장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한 눈에 봐도 의원은 아니었다. 좌석이 차지 않자 의회사무국 직원이 급히 보좌관들(Capitol Staffers)을 데리고 온 것이다. 나이가 앳된 대학생 인턴도 보였다. 그래도 모자라자 방청석에 있어야 할 사람까지도 호출됐다. 대통령을 수행한 한국 장관들과 주미 한국대사관 직원들도 의원석에 앉아 박수를 쳤다. 현역이 아닌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도 본회의장 맨 중앙에 모습을 보였다. 의회사무국은 연설 자리를 메우느라 소동을 벌였다. 하원에는 의원 심부름을 하는 고교 3년생인 ‘사환(page)’들이 있다. 하지만 의회예산 절감 차원에서 이 프로그램을 없앴다. 이날은 사환 대신 부랴부랴 보좌관과 인턴을 박수부대로 동원했다. 45차례 박수엔 이들의 동원이 큰 힘이 됐다. 하원 본회의장에서 우리 외교 현실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았다. 주미대사관은 이 대통령의 의회 연설문을 미국 로비회사인 ‘웨스트윙라이터스(West Wing Writers)’에 써 달라며 1만8500달러를 줬다. 연설 메시지를 결정하는 데 3500달러, 초안을 궁리하는 데 6000달러, 연설문 작성 전략 수립에 3500달러, 한국 정부가 만든 최종 연설문 점검에 5500달러를 썼다. 주미대사관 측은 “미국민 정서에 맞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효과에 비하면 이 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 달 5일부터 미국을 방문한다. 의회에서 상하원 합동연설도 한다. 국빈방문보다 단계가 낮은 실무방문(working visit)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이다. 미국에서도 없었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점이 감안된 듯하다. 이번엔 미국 로비 회사에 돈 주고 대통령 연설문 받지 말고 외교관과 청와대 연설담당 비서관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박 대통령도 본회의장에 울려 퍼지는 요란한 박수 소리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2년 반 전 참 민망해보였던 미 하원 본회의장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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