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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

나무가 명 재판관이었다.

by 安喩齋 2012. 2. 27.

청주 중앙공원 압각수, 고려 말 대홍수 때 의로운 선비 구한 청주의 ‘어르신’

 

나무가 고마운 건 수명이 길어서, 사람이 채 기억할 수 없는 숱하게 많은 사람살이의 흔적을 자신의 속살에 챙겨 둔다는 데에도 있다. 나무가 한 지역 역사의 상징이 되어, 지역민의 존경을 받는 존엄한 생명체로 남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무를 향해 제사를 올리는 제의에 대한 종교적 편견과 오해가 때로는 나무를 소홀히 여기는 장애가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에서는 오래 살아온 나무를 소중하게 지키고, 나무를 향해 사람살이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풍습이 이어진다. 그건 우리의 삶과 우리가 이웃한 모든 생명에 대한 존경과 자존심을 표현하는 일종의 상징 행위라 해도 될 일이다.

▲ 행목성신제를 마치고, 봄맞이 채비에 한창인 청주 압각수.

충북 청주시 한복판에는 중앙공원이라 이름한 시민의 쉼터이자 이 지역민의 역사가 그대로 담긴 유적지가 있다. 도청과 청주시청, 청원군청과 이웃한 청주의 중심이다. 공원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건 900살 된 한 그루의 은행나무다.

 

우리나라에도 은행나무라는 본래 이름을 젖혀놓고, 압각수로 불리는 은행나무가 있다. 바로 이 청주 압각수와 경북 영주 순흥면 금성단에 서 있는 ‘순흥 압각수’다. 두 나무에 별다른 연관성은 없다.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모두 옛 유학자들과 관련한 유래와 그들의 기록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중국 문헌에 익숙한 유학자들이 이 나무에 얽힌 고사를 기록할 때 중국식 별명을 사용한 게 그 시작이지 싶다.

▲ 찢기고 부러진 채 900년의 세월을 증거하는 청주 압각수의 줄기.

 

대학자 목은 이색 선생의 목숨 살리고 무죄 대변

 

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가 압각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건 고려 말, 이성계가 고려를 뒤엎으려는 때부터다 . 이성계가 정몽주와 함께 공양왕을 옹립하고 그의 반대파를 차례대로 제거하던 무렵이었다. 그때 고려의 무신 이초(李初)는 명나라의 힘을 빌려 이성계의 계획을 막으려 했다고 거짓으로 꾸몄으나, 이성계는 이색선생과 그의 아들 종학, 제자 이숭인, 권근 등 반대파의 주요 인물 십여 명을 청주 감옥에 감금했다. 공양왕 2년인 1390년 5월에 벌어진 ‘이초의 옥사’가 그 사건이다.

 

그해 여름 청주에는 대홍수가 났다. 며칠째 불어난 큰 물로 청주 관아는 물론이고, 시내의 거의 모든 집들이 물에 쓸려 내려갔으며 목은 선생이 갇혀 있던 감옥도 물에 잠겨 무너지고 갇혀 있던 사람들까지 휩쓸려갔다. 그때 목은 이색 선생은 아들 종학, 이숭인 권근 등 10명이 감옥 곁에 서 있는 큰 나무의 가지 위에 올라가 목숨을 건졌다.  기적 같은 이 상황을 전해들은 공양왕은 이는 곧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라며 이색 선생을 풀어줬다고 한다. 그때 이색선생과 함께 풀려나온 권근이 지은 시는 지금도 나무 앞의 시비(詩碑)에 남아 옛일을 증거한다.

 

정몽주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공양왕을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과 함께 옹립하여 그들과 한 무리였다. 그러나 공양왕으로 부터 신임을 얻어 2인자의 위치인 문하시중에 이르자 그동안 뜻을 함께했던 정도전을 감옥에 넣고 상관이었던 이성계를 경계하고, 이초사건으로 감옥에 있던 스승인 목은과 그의 제자들을 이 때부터 옹호하여 자기 당으로 만들려 했다. 그리고 이성계측을 견제하다가 이를 눈치 챈 이방원에 역습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몽주의 고려 충신 운운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900살 나무에 청주·민족의 역사 오롯이

 

의로운 선비를 가지 위에 보듬어 안고, 큰물을 피할 수 있을 만큼 큰 나무였다면, 당시에도 300살은 족히 넘었을 게다. 나무를 900살 정도로 추측하는 근거다. 키 20m, 줄기둘레 8.6m인 청주 압각수의 수세는 그러나 별로 좋지 않다. 줄기 중심부의 상당 부분은 썩어들어 충전재를 메워 준 수술 자국이 역력하고, 부러진 굵은 가지들의 흔적도 눈에 띈다.

 

900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디는 건 나무에게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무는 여전히 왕성한 생명력을 잃지 않고, 땅 깊은 곳으로부터 봄이 다가오는 소리를 짚어가며 서서히 물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나무에 청주와 우리 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건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특히 내력이 확실한 유서 깊은 나무가 곁에 있다는 게 더없이 듬직하다.”고 말한다.

 

죄 없는 사람을 가려낼 만큼 현명함을 갖춘 청주 압각수는 청주시민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국민이 더 소중하게 지켜야 할 자연유산이자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