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감상

화창한 봄 날

by 安喩齋 2011. 4. 8.

 

         봄 날

 

무심코 다니던 길 

담벽 밑 냉이가 훌쩍 컸다.
벽에 갖혀, 애처롭던 매화

한쪽으로 쓰러져가며,

꽃을 피웠다.  

이 봄 날, 차이코프스키를 만나다.

 
                                                                               
 
  
 
 

 

 

Piano Concerto No.1 in Bb minor, Op.23

 

Pyotr Ilich Tchaikovsky

1840-1893


Vladimir Horowitz piano

Arturo Toscanini cond

NBC Symphony Orchestra

 

유명세를 타는 클래식 음악 중에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빠지지 않습니다. 또 거의 모든 정상급 피아니스트들이 반드시 녹음할 정도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죠. CD로 발매된 종류만 해도 무려 150종이 넘는다고 하니 단연 최고의 베스트셀러 레퍼토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피아니스트라면 응당 연주해야 하며 이 곡을 통해 비로소 정상급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을 정도로 연주자로서의 가능성과 예술성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전형적인 러시아 작품이라 할 수 있죠. 러시아 낭만주의의 뿌리라 할 ‘향수’를 이 곡의 가장 큰 주제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1958년 시작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지정 연주곡입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호로비츠에게는 그야말로 분신과도 같은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로비츠가 최초로 자신의 연주를 선보인 1925년 독일에서의 데뷔 작품이 바로 이 곡이었고, 이듬해 미국에서 비첨과 협연하며 데뷔한 곡도 이 곡이었습니다. 그리고 1940년대 장인 어른인 토스카니니와 협연을 했던 곡도 바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습니다.


1st Mov.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


2nd Mov. Andante semplice


3rd Mov. Allegro con fuoco

 

 

이 곡이 작곡된 것은 차이코프스키가 모스크바음악원 교수가 된 지 9년째 되던 해인 1874년 12월 무렵이다.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에 곡을 완성하였으나, 초연은 1년 가까이 지난 1875년 10월 25일 보스턴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늘 비관적이고 회의적이었던 차이코프스키는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인 이 곡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는 당시 모스크바음악원의 원장이며 러시아 피아니즘의 대부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과 동료 교수 프베르트에게 이 곡을 직접 연주하여 들려주었다.


차이코프스키는 피아노 파트의 완성도는 어떻든 곡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평을 기대했지만 루빈스타인은 이 작품을 엉뚱하고 기괴하며 거북스럽기 그지없는, 한마디로 구제불능의 곡이라고 신랄한 평을 서슴지 않았다. 격분한 차이코프스키가 방을 뛰쳐나가자 당황한 루빈스타인은 뒤따라나가며 몇 부분을 고치면 자신이 연주해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단 하나의 음표도 고칠 수 없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이 일에 대한 전말은 동석했던 프베르트의 기록과 차이코프스키가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전해지고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당시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떨치던 한스 폰 뷜로에게 이 곡의 초연을 의뢰하였다. 뷜로는 이 곡을 살펴보고 매우 만족해했으며 성공을 확신했다. 보스턴에서 가진 초연은 뷜로의 확신대로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뷜로는 이 사실을 당시 막 발명된 전보로 모스크바에 있는 차이코프스키에게 황급히 알렸다. 차이코프스키는 애초에 루빈스타인에게 헌정하려던 이 작품을 뷜로에게 헌정하였다. 모스크바에서의 초연은 3년 뒤 차이코프스키와의 우정을 회복한 루빈스타인이 지휘를 맡아 1878년 3월 22일에 이루어졌다. '단 하나의 음표도 고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던 차이코프스키는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을 부분 부분 고쳐 나갔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악보로 수정된 것은 작곡된 지 약 15년이 지난 1889년경이며, 이 곡을 런던에서 초연한 영국의 피아니스트 에드워드 단로이터에게 기술상의 조언을 받았다.

 

 

이 작품은 1875년 미국 보스턴에서 초연을 한 독일의 지휘자한스 폰 뷜로에게 헌정되었다.

 

 Pyotr Ilich Tchaikovsky

 

 

 

 
 

'음악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은 느낌   (0) 2011.05.30
봄 처녀  (0) 2011.04.09
막스브르흐  (0) 2010.09.08
웰링턴의 승리  (0) 2010.09.06
남자의 눈물  (0) 2010.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