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들어선 문턱에서, 옛 생각에 젖어 본다.
고전음악과의 인연은 친구 녀석이 나를 끌고 간 곳이 삼각동(을지로입구)에 있던 아폴로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해서 고전음악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그 녀석은 나보다 먼저 입문해서, 나에게 어쩌구저쩌구 하며, 으슥거렸다. 지금 기억은 못하겠지만, Stravinsky의 Firebird와 Beethoven의 Wellington's victroy가 기억에 남는다.
그 후, 나는 그 녀석이 한 것처럼 친구를 데리고 음악감상실을 찾곤했다. 삼각동에 있던 아폴로와 명동에 있는 필하모니가 그 곳이다.
여유가 생기면,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기로 마음먹었지만 생각대로 안되었다. 그러던 중, 영국에 있을때, 명성있는 브리티쉬 사운드를 장만하여야지 했으나, 여의치 않아 best buy 1인 실용적인 cyrus(mission으로 개명)를 마련하였다.
런던에서 길 찾기란, 서울과 딴판이었다. 거기가 거기였다. 랜드 마크 건물이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길 찾는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번지수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때, 고생한 덕에 지금은 런던에 가도 번지만 알면 어디고찾을 수 있다.
영국은행 (ENGLELAND BANK) 앞을 지나, 한참을 헤메다가, 말 탄 장군 동상이 나타났는데, 동상 앞에는 생화가 놓여있다. 우리와 사뭇 달라, 무척 감동 받았다. 알고 보니 다름아닌 웰링턴 동상이다.
음악으로만 알고있던 인물, 그 실제 인물의 동상을 앞에 두고 있다니, 가슴이 설례였다. 우연찮았지만, 믿어지지 않은 현실이다. 그 후, 그 앞을 지나며 동상의 웰링턴과 친해졌다.
그런, 추억이 새록한 초가을 문턱에서 Wellington's Victory 를 감상하며, 이 곡을 소개한다.
Wellington's Victory, Op. 91 "Battle Symphony": Storm March
Conductor : Herbert von Karajan
Ensemble :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or : Herbert von Karajan
Ensemble :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절말 좋은 음반 레코딩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 일명, 전쟁 교향곡 혹은 비토리아의 전쟁]은 1813년 6월 21일 스페인 비토리아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웰링턴"이 이겼다는 승전보가 빈에 전해지자, "베토벤"의 친구이며 메트로놈의 발명자인 "멜첼: MALZEL"이 "베토벤"에게 의뢰해 썼던 작품이다. 전곡은 2부로 되어 있으며, 북과 신호나팔, 전투 나팔, 그리고 포격 소리까지 동원되는 일종의 전쟁 표제음악이다. 포격하는 소리가 스피커를 찢을 듯이 사실적으로 녹음되어 있다. 전쟁음악으로 너무도 유명한 "리스트"의 [훈족의 전투]와 [돌격 행진곡]도 텔락이 자랑하는 음질로 담겨있다.
원 제 : 웰링턴의 승리, 또는 비토리아의 싸움
Wellingtons Sieg, oder Die Schlacht bei Vittoria op. 91(1813)
전쟁 교향곡 D장조 작품91 "웰링턴의 승리"
이 곡은 교향곡이라고 불려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교향시라고 불리어야 할지, 아직까지 논란이 대상이 되는 곡으로, 어쨌든 이 곡의 원재는 <<웰링턴의 승리>> 또는 <<빅토리아의 전투>>라고 불리는 곡이다. 그렇지만 자필악보에는 "전쟁 교향곡"이라는 타이틀로 출판되었다.
"웰링턴의 승리"는 1813년 6월 12일 영국의 Arthur Wellesley (후에 Duke of Wellington) 장군이 스페인 Vitoria의 Basque City 근처의 전투에서 프랑스의 나폴레옹군을 격파시킨 전투를 기리기 위하여 작곡된 곡으로 1813년 12월 8일 빈 대학 강당에서, 메트로놈을 발명한 멜첼이 주최한 <하나우 전쟁 상이용사들을 위한 자선 음악회>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교향곡 8번과 같이 초연되어 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날 음악회에서는 소위 "전쟁 교향곡"이라 불리우는 <빅토리아 회전과 웰링턴의 승리> op. 91과 교향곡 8번 op. 93도 같이 초연되었다.
전쟁이라는 주제는 18세기의 활약했던 거의 모든 작곡가들이 다루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반부는 전투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영국군 진영의 북 소리와 나팔 소리, 영국군의 행진, 프랑스군 진영의 북 소리와 나팔 소리, 프랑스군의 행진, 프랑스군의 도전과 영국군의 응전 그리고 전면 전투의 순으로 진행이 되며, 후반부는 단악장 형태의 교향곡이다.
3. Marsch C-dur WoO.20
바로위의 연주는 1960년 6월 9일 London의 Wembly Town Hall에서 Antal Dorati의 지휘로 London Symphony Orchestra에 의하여 녹음되었고, 전쟁 장면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하여 작곡자 Beethoven 자신이 지시했던대로 오케스트라의 배치를 아래 그림과 같이 했다고 하며, 총포 소리도 프랑스 진영과 영국 진영의 소리를 일일이 구분하여 Beethoven 자신이 스코어에 표시했다고 한다.
또한 음악 중에 인용된 소총 소리와 대포 소리는 미국 West Point의 육군사관학교에서 전문가들의 지도하에 6-Pound Smooth-Bore Bronze Cannons, 12-Pound Howitzer, French Charleville-Pattern Muskets, British Brown Bess Muskets 등 실제 소총과 대포를 발사하여 녹음한 소리라고 한다.
곡 설명
곡의 구성의 보면, 4악장이 아닌 1부,2부의 두부분으로 구성이 되었다는 점에서 교향곡보다는 교향시에 가까운 곡으로, 최초의 교향시라고 할 수 있는 곡이다.
각각 1부 : <전쟁터>, 2부 : <승리의 교향곡>이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으며, 연주시간은 15분정도로 짧은 곡이다.
이 곡은 멜첼이 만든 오케스트라 소리를 내는 자동합주용기계를 위하여 만든 곡으로, 원곡이 이 악기를 위한 곡이고,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곡이 바로 이 전쟁 교향곡이다.
그러나 후에 멜첼과 베토벤사이에 이 교향곡의 저작권에 문제가 생겨 소송까지 이르지만, 베토벤의 소유로 인정받았다.
◆1.Wellington's Victory
◆2.Marsch D-dur WoO.24
◆3.Marsch C-dur WoO.20
작곡과 초연
▶ 워터루 승리의 기념주화, 웰링턴 장군(스페인코인)
베토벤의 스케치 북에 의하면 제 7번 교향곡은 늦어도 1811년에 착수된 듯하다.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812년에 들어와서부터라고 전해진다. 제 2악장의 스케치는 이보다 앞선 1806년 현악사중주 작품 59-3의 작곡중에 발견된다는데 아마도 처음엔 이 현악사중주에 쓸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이 곡의 완성은 1812년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현재 베를린의 므로시아 국립 도서관에 있는 자필 악보의 표지에 <7 Symphonie 1812 ... 13 ten>이라고 적혀있는데 몇월인지는 파손 때문에 알 수 없지만 5월 13일인 것으로 추리된다. 베토벤은 1813년 2월에 공개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하고, 비공개의 초연은 1813년 4월 20일, 빈의 루돌프 대공의 저택에서 8번 교향곡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리고 1813년 12월 8일 빈 대학 강당에서 메트로놈을 발명한 멜첼이 주최한 <하나우 전쟁 상이용사들을 위한 자선 음악회>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공개초연되었다. 이날 음악회에서는 소위 "전쟁 교향곡"이라 불리우는 <빅토리아 회전과 웰링턴의 승리> op. 91과 교향곡 8번 op. 93도 같이 초연되었다. 연주회의 성격상 애국적인 기세가 높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교향곡 7번보다 <전쟁 교향곡>이 더 큰 인기를 받긴 했지만 7번도 대호평이었으며 선율이 아름다운 제 2악장은 앙콜을 받기까지 했다. <전쟁 교향곡>과 교향곡 7이 너무 인기가 높아서 결국 4일 뒤인 12월 12일에 재연되고 이듬해 1월과 2월에도 계속 연주회가 열렸으며 그 때마다 제 2악장은 앙콜되었다고 한다. 초연부터 대호평을 받았다는 것은 이 곡의 대중성을 그대로 들어내보이는 것으로 한번만 들어도 귀에 곧 익숙해지는 악상 (2악장)과 함께 베토벤 특유의 넘치는 위트 (3악장)와 무엇보다도 광란에 넘치는 1악장과 4악장의 매력이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출처 : 인터넷 여기 저기
나폴레옹의 황제 취임과 베토벤
"너 역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가! 너 역시 모든 인간의 권리를 짓밟을 테지. 그리고 너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모든 인간 위에 군림하며 폭군이 되겠지."
나폴레옹이 황제 자리에 즉위했다는 소식을 …… 그 소식을 접한 베토벤은 격노하여 이렇게 외쳐댔던 것이다. 그는 테이블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악보의 표지 윗 부분을 찢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표지는 다시 씌어졌다. 그때까지는 "sinfonia eroica"(영웅 교향곡)라는 말은 적혀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탈리아가 당당하게 여러 나라의 대열에 동참할 때가 왔다. 만약 제군들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한다면, 유럽을 깜짝 놀랄 만큼 뒤집어 놓고 이탈리아의 위대함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무기를 들고 일어나라. 이미 해방된 이탈리아 지역은 인구도 증가하고 생활도 윤택해졌다. 제군들의 자유를 가로막고 인권을 탄압하는 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주자. 나는 제군의 군대를 지휘할 것이다. 제군은 이로써 명예와 영광과 부(富)를 얻게 될 것이다.'- 나폴레옹의 연설(1796년)에서 -
▒ 영국의 군인이자 정치가 '아서 웰링턴' [1769~18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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